워싱턴 D.C.가 76미터 높이의 개선문을 세우려 한다. 2025년 제안돼 2026년 5월 연방예술위원회(CFA)의 승인을 받은 이 기념물은 미국 독립 250주년을 축하하는 구조물로 소개된다. 그러나 공청회에 접수된 의견의 99.5%가 반대였다. 기념물은 공동체를 하나의 기억 앞에 모으기 위해 세운다. 거의 모두가 반대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앞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문은 정확히 무엇을 기념하는가.
250피트, 파리를 넘어서려는 문
설계는 애틀랜타의 해리슨 디자인(Harrison Design)이 맡았고, 높이는 250피트(약 76미터)로 영감을 준 파리의 아르 드 트리옹프보다 약 30미터 더 높다. 부지는 컬럼비아 아일랜드의 메모리얼 서클로, 포토맥강 건너 링컨기념관과 마주 보며 알링턴 국립묘지로 들어가는 초입에 놓인다. 백악관은 공사비를 공개하지 않은 채 공공과 민간 재원을 섞어 조달하겠다고만 밝혔다.
99.5%가 반대한 승인
논란은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6년 2월,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은 베트남전 참전용사 세 명을 대리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업이 의회와 관련 기관의 정당한 승인 절차를 건너뛰었고, 남북전쟁 이후 형성된 국민적 화합을 상징해 온 링컨기념관과 알링턴 하우스 사이의 시선축을 끊어버린다는 이유였다. 5월 공청회에서 위원회는 600건이 넘는 시민 의견을 검토했고, 그중 약 99.5%가 반대였다. 그럼에도 승인은 그대로 내려졌다.
"기념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국가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관한 선언이다."
건축은 언제 권력의 언어가 되는가
개선문은 로마에서 승리한 군대를 행진시키기 위해 태어났고, 파리는 나폴레옹의 원정을 기리기 위해 그 형식을 되살렸다. 개선문은 계보상 '승리의 건축'이다. 그렇기에 반대는 하나의 질문으로 날카로워진다. 이 문은 이긴 전쟁도, 견뎌낸 전투도 기념하지 않는다. 아키텍처럴 레코드(Architectural Record)의 비평가들은 이를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특정한 승리가 없는 이 기념물은 공동의 국가적 기억이 아니라 그것을 지시한 인물에 대한 헌사로 읽힌다는 것이다. 건축이 공공을 대변하기를 멈추고 후원자를 대변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시선축 논쟁이 중요한 이유도 같다. 도시의 기념 축은 장식이 아니라, 한 사회가 무엇을 시야에 남겨둘지에 관한 합의다. 링컨-알링턴 축에 76미터 개선문을 끼워 넣는 것은 그 합의를 시민의 동의 없이 다시 쓰는 일이다. 이 논쟁이 워싱턴을 훌쩍 넘어서는 까닭이 여기 있다. 랜드마크를 세우는 모든 도시는 — 서울을 포함해 — 결국 같은 시험대에 오른다. 그 기념물은 곁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세우라 명령한 그 순간의 것인가.
편집장 코멘트
ARCHINODE 관점에서 이 논쟁은 건축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건물은 기능을 담기 전에 먼저 메시지를 담으며, 가장 강한 구조물은 그 메시지를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도시들이 저마다의 랜드마크와 기념물을 계획하는 지금, 워싱턴 개선문은 하나의 경고 틀을 제공한다. 합의 없는 기념비성은 도시를 하나로 묶지 못한다. 오히려 돌에 새겨진 분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