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건축 트리엔날레가 9월 17일부터 10월 1일까지 소피엔베르그 교회에서 아홉 번째 판을 연다. 주제는 'What if Nature Comes First?(자연이 먼저라면?)'. 큐레이터 리네 람스타(Line Ramstad)가 30개 이상의 국제 프로젝트를 모았고, 전시에 콘퍼런스·세미나·워크숍·영화 상영·가이드 워크를 더한 2주짜리 페스티벌 형식이다. 질문의 틀이 의도적으로 뒤집혀 있다. 건축이 자연에 주는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자연을 출발 전제로 두었을 때 무엇을 짓고,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변형하고, 무엇에 손대지 않을 것인가다. 예산서 맨 끝의 저감 항목이 아니라 첫 줄에 놓는다는 뜻이다.

네 개의 스케일, 그리고 그 뒤의 숫자

큐레이션 틀은 네 개의 스케일을 가로지른다. 재료(Materials), 구조(Structures), 영토(Territories), 시스템(Systems). 순서대로 건설 자재의 선택과 재사용, 건물의 수명, 건축과 땅의 관계, 그리고 애초에 무엇이 개발되는지를 결정하는 경제·규제 시스템이다. 마지막 스케일이 이 전시를 자재 전시와 구분 짓는다. 규제와 금융을 디자인의 스케일로 호명한다는 건, 결정적인 선택이 도면 파일을 열기 전에 이미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이 모든 틀 아래에 깔린 숫자는 무뚝뚝하다. 건설은 전 세계 폐기물 발생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노르웨이에서는 건물이 단일 최대 폐기물 발생원이다. 한국의 수치도 같은 범위에 있고, 오히려 더 날카롭다. 2025년 발표된 2024년 기준 전국 폐기물 통계에 따르면 총 폐기물 발생량은 약 1억 7,953만 톤이고 그중 건설폐기물이 36.5%를 차지했다. 사업장배출시설계 폐기물 46.7% 다음으로 크고, 생활폐기물 9.5%의 거의 네 배다.

해체 현장에서 분리 배출되는 건설폐기물
2024년 한국 전체 폐기물의 36.5%가 건설폐기물이었다 — 생활폐기물의 약 네 배

두 숫자를 나란히 읽으면 오슬로의 질문이 더는 추상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한 나라 폐기물 흐름의 3분의 1이 짓고 허무는 행위에서 나온다면, '자연이 먼저'는 일차적으로 더 친환경적인 제품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해체율과 건물 수명에 관한 질문이다. 오슬로의 분류로는 '구조' 스케일이다. 25년 뒤 헐릴 건물에 들어간 고성능 자재는 어떤 운영 단계 절감으로도 회수되지 않는 내재탄소 부담을 안는다. 인증 체계는 이 지점에서 느렸다. G-SEED, LEED와 그 동류들은 여전히 건물이 서 있는 동안 무엇을 하는지를, 앞선 건물을 허물지 않기로 한 결정보다 훨씬 후하게 평가한다.

이 트리엔날레는 전에도 이 질문을 했다

여기서부터는 회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2019년, 제7회 오슬로 건축 트리엔날레의 주제는 'Enough: The Architecture of Degrowth(충분하다: 탈성장의 건축)'였다. 174개 이벤트, 242개 참여 팀과 개인. 무조건적 GDP 성장 추구가 환경 재앙을 부르고 있으며 관행적 방식은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 본격 프로그램이었다. 7년이 지나 제9회가 자연이 먼저라면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다. 두 명제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인접해 있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하나다. 2019년 판은 무엇을 바꿨는가.

"2019년 이 트리엔날레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2026년에는 자연이 먼저라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 두 문장 사이에서 전 세계 건설폐기물은 줄지 않았다."

건축 비엔날레 회로에는 좀처럼 호명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명제를 생산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그 명제를 사후에 감사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트리엔날레가 끝나고 도록이 나오면, 3년 뒤 돌아와 그 명제가 무엇을 치르고 무엇을 아꼈는지 보고할 것을 요구하는 조항은 형식 어디에도 없다. 장소도 짚어둘 만하다. 교회에서 2주간, 도보 투어와 상영을 곁들인다. 이것은 관람과 담론에 최적화된 형식이지, 큐레이션 스스로 결정적이라고 지목한 규제·금융 스케일에 최적화된 형식은 아니다. '시스템'이 정말 네 스케일 중 하나라면 그 방에 있어야 할 사람은 도시계획 담당 공무원, 대출기관, 보험사인데, 공개된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회의를 통과하고 남는 것

형식 비판을 옆으로 치워두어도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재료와 시스템을 같은 스케일 목록에 올린 것은 분석적으로 옳고, 한국 실무가 가장 덜 내면화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국내 녹색건축 논의는 여전히 제품 질문의 형태로 도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단열재, 어떤 유리, 어떤 인증 등급. 오슬로의 틀이 말하는 바는, 30년 만에 건물을 허무는 시스템 안에서 답해진 제품 질문은 순서가 틀린 채로 답해진 질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36.5%는 노르웨이에서 수입한 주장이 아니라 그 주장의 국내 증거다.

편집장 코멘트

자재 브랜드에게 실행 가능한 독법은 '친환경'이 아니라 '해체 가능성'이다. 수명과 재사용이 담론에서 사양서로 넘어간다면 — 오슬로의 틀, EU의 규제 방향, 한국의 36.5%가 모두 같은 쪽을 민다 — 설계·시방 담당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건 무엇으로 만들었나'에서 '이건 어떻게 분해되고, 분해된 다음 어디로 가나'로 옮겨간다. 접착 방식 조립, 분리 배출이 불가능한 복합 패널, 철거 시 바탕재를 함께 파괴하는 마감재는 현행 어떤 인증에서보다 이 질문 아래에서 훨씬 불리해진다. 해체 순서와 실제 재활용 경로 — 다운사이클링과 구분되는 — 를 문서로 제시할 수 있는 브랜드가 시장이 향하는 질문에 답하는 쪽에 선다. 오늘 대부분의 제품에는 그 문서가 없고, 바로 그래서 지금 만들어두는 비용이 싸다.